Fixed headers - fullPage.js
본문 바로가기

통합검색

원하시는 정보를 빠르게 찾으실 수 있도록 도와드립니다.

소통공간

자유게시판

무분별한 게시, 상업적, 종교적, 정치적, 개인의 사익도모, 상호비방 및 부정적인 글 등은 임의로 삭제되며 게시글 작성 권한이 차단되오니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목록
자유게시판 제주에도 여인국이?
15-03-21 20:22 3,845회 0건

남과 녀(제주에도 여인국이?)


사실 이 논리는 현생 인류의 가계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 근원지는 아프리카 대륙이었으며 어느 한 여성이 인류의 공통 조상이라는 ‘아프리카 이브설’에서도 그대로 인용된다.


이런 최 교수의 논리는 “유전적으로나 진화적 측면에서 남성보다 여성의 기여도가 훨씬 높기 때문에 남성 중심의 혈통을 기록하는 현재의 호주제는 비합리적이다”라고 말한다.

▲오래된 제주도의 고지도들을 보면 동남쪽 바다에 여인국(女人國)이 있다.
우리 전설에는 이 여인국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동해 저편에 인어들의 나라인 여인국이 있는데, 고기잡이 나간 어부들을 유혹하여 번갈아 사랑하여 아기를 낳는다.
낳은 아기가 사내 아이면 바다에 버리고 계집아이만 기른다.
그런데 ‘여다(女多)’의 섬 제주에서 여자 아이를 귀하게 여기고 반대로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버린다는 설화도 이 여인국 전설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옛날 제주에 왔던 경래관(京來官)들이 문화적 우월의식으로 제주의 풍속을 여인국적 인상으로 보고 글을 남겼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18세기 조선 현종(顯宗) 때 농정가 서유구가 쓴 임원경제십육지(林園經濟十六志)에는 바다 인어이야기가 있다.
여인의 이목구비와 손.손톱에, 온몸은 옥처럼 하얀 살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저자는 지금의 제주해협인 남해안에서 그물에 걸린 인어에 대한 견문을 적고 있는데 유방이나 배꼽까지 있었다고 썼다. 또 이 인어는 암컷과 수컷이 교합하는 것이 꼭 사람이 하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고 했다.
이러니 당시 이 책을 읽은 관리들이 제주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 상상해 보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조선시대 옛 문헌을 보면 암컷과 수컷을 묘사하는 암호 같은 부호가 있다.
관공서나 시장의 문서인 장기(狀記)엔 열고 닫는 괄호로 암수를 표시하고 있는 것이다.

괄호 중 ‘(’는 수컷, ‘)’은 암컷을 의미했다.
이를테면 기왓장 100장을 표시할 때 기와 ‘와(瓦)’자에 ‘)’를 표시하면 암키와 100장을 뜻했고, 닭 ‘계(鷄)’자에 ‘(’표시를 하면 장닭 세 마리를 의미했다.

이런 부호를 설명하던, 지금은 돌아가신 대학 때 교수님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 ‘인(人)’자를 생각한 것이다.”

사회생물학자들이 무어라 해도 사람은 남(男)과 여(女)가 그 하나로 존재할 수 없다는 설명이 기억나는 것이다.

부영주 booyj@jejunews.com


<저작권자 ⓒ 제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세조 때 최부가 말하는 조선 동남쪽 여인국 l 제주도 문화



1541년 남미의 안데스 고원 동쪽에 존재한다는 보물의 왕국 엘도라도를 찾아나선 곤살로 피사로의 스페인 탐험대는 결국 200여명의 부하들과 함께 밀림 속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곤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피사로의 참모 프란시스코 데 오레야나(Francisco de Orellana)가 선발대로 나서 동쪽으로 난 큰 강을 따라 탐험을 계속했다.




이 항해 도중 오레야나 일행은 여인들의 부족을 발견하게 된다. “여인들은 하얀 피부에 키가 크고 머리를 여러 갈래로 길게 땋아 내렸다. 이들은 체격이 매우 건장했고 은밀한 부위만 살짝 가린 채 알몸으로 돌아다녔다.” 







그들은 이들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인국 아마조네스라고 믿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이후 그 강의 이름도 ‘아마존’이라 불리게 됐다. 이처럼 서양에 아마조네스가 있었다면 동아시아에는 여국(女國) 혹은 여인국의 신화가 있었다.



오레야나가 아마조네스를 ‘발견’하기 53년 전인 1488년 지구 정반대편에 있는 조선에서는 제주도에 근무하던 최부(崔溥·1454~1504)라는 관리가 부친상을 당해 급히 육지로 돌아오려다가 풍랑을 만나 중국 절강성 쪽으로 표류하게 된다. 이후 최부는 6개월여에 걸친 고행 끝에 조선으로 돌아와서 ‘표해록(漂海錄)’이라는 기행문을 남겼다. 한글로 번역도 돼 있다.



여기에 보면 표류 초기에 최부가 당시의 지리적 인식을 바탕으로 한반도 주변에 대한 지리 정황을 상세하게 이야기하는 대목이 나온다. “서남방을 향하여 조금 남쪽으로 가다가 서쪽으로 가면 곧 섬라(暹羅ㆍ샴, 태국), 점성(占城ㆍ참파, 베트남 중남부), 만랄가(滿剌加ㆍ말레이시아의 말라카) 등의 나라요, 정남방은 유구국(오키나와)이요, 정남방으로 가다가 동쪽으로 가면 여인국(女人國)과 일기도(一岐島)요, 정동방은 일본국과 대마주(대마도)다.” 



현대적 지리정보를 바탕으로 보자면 ‘여인국’ 하나를 빼면 나머지는 대부분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당시 최부는 육지를 향해 올라오던 중 서북풍을 만나 배가 동남방으로 표류하고 있으니 “유구국이나 여인국에 닿게 될 것”이라고 막연하게 전망하기도 했다. 그의 판단이 옳았다 하더라도 그는 유구국에는 혹시 닿았을지 몰라도 여인국에 닿을 리는 없었다. 여인국은 애당초 이 지구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환상의 나라였다.



그런데도 최부가 여인국에 관해 자신감 있게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의 영향 때문이었다. 중국에서는 당나라 때부터 여인국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다. 당나라 때 편찬된 책 ‘양서(梁書)’에 보면 ‘부상국(扶桑國ㆍ일본으로 추정) 동쪽에 여인국이 있다’면서 그 풍속을 상세하게 적어 놓고 있다. 



“용모가 단정하고, 얼굴은 매우 깨끗하지만 몸에 털이 있어서 털 길이가 땅에 닿을 정도다. 2월과 3월에는 물 속에 들어가서 임신을 하며, 6월과 7월에 아이를 낳는다. 여인의 가슴에서는 젖이 나오지 않지만 목 뒤에 있는 털 속에서 즙이 나와서 아이를 먹인다.” 



물론 황당한 이야기다. 명나라 때 저술된 ‘서유기’에는 삼장법사가 여인국의 여황으로부터 유혹을 당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의 경우에도 신라의 석탈해왕이 바로 여인국의 후손으로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기록돼 있다.

                        - Copyrights ⓒ 조선일보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목록

Fixed headers - fullPage.j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