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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행복이란?
14-08-09 20:00 3,703회 0건

서너 해 전 그날도 이번 여름처럼 몹시 무덥던 오후였다. 진료를 마친 후 퇴근 준비를 하던 참에 남루한 옷차림에 지친 모습을 한 중년 여인이 간절하게 왕진을 요청하는 사태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곳에 오기 전 몇 군데 병원에서 거절을 당했던 여인의 목소리는 애원에 가까워서 그만 나는 저녁 약속을 취소하고 그 여인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도시의 개업의로서, 특히 비뇨기과 의사로서 왕진은 흔한 일은 아니었고 그런 적도 없었다. 택시에서 내려서 좁은 골목길을 돌고 돌아 다 쓰러져 가는 집으로 들어갔다. 말기 암으로 대학병원에 입원했으나 지금의 의술로는 더 이상 해줄 것이 없어 퇴원한 중년의 남자가, 피골이 상접한 상태로 두려움과 근심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맞았다.


 


소변을 보지 못해 요도 카테터(foley : 방광 내용액의 배출을 위해 사용되는 고무)를 삽입한 상태로 퇴원했는데, 그것이 막혀 방광에 소변이 차고 힘들어서 의사를 부른 것이었다.


나는 카테터를 갈아 주었다. 암은 전신에 퍼져 있었고 욕창도 심한 편이었다. 살아 있었지만 내가 볼 때 환자의 삶은 얼마 남지 않아 보였다.


 


아내는 그런 남편을 깊은 애정과 사랑의 눈길로 바라보며 위로했다. 카테터가 막혀 힘들어할 때 이 병원 저 병원 정신없이 찾아다니며 애원을 하다시피 왕진을 청한 것도, 남편의 고통을 덜어 주고자 하는 아내의 간절한 마음에서였다.


 


요즘 성격이 맞지 않는다고, 혹은 경제적 이유로, 부부간의 불륜으로, 상대방의 폭언이나 폭행같은 학대로 이혼이나 별거, 가출, 정서적 이혼 상태가 밥먹듯이 한 집 건너 한 집 꼴로 존재하는 세상에 그날은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며 마음 깊숙한 곳에서 울려오는 감동을 느꼈다.


 


그대로 빠져나오기가 아쉬워 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 같은 데, 모두 기억나지는 않지만


보이는 것은 잠간이고, 보이지 않지만 실재하는 세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고통과 눈물이 없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소망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합니다. 힘내십시오. 라고 이야기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환자와 아내의 눈이 순간 반짝 빛났고, 두려움과 절망의 표정이 사라진 듯 보였다.


 


환자의 아내는 한사코 사양하는 나에게 봉투를 내밀더니 주머니에 넣어 주었는데 어려운 형편에 적지 않는 돈이었다. 돌아오는 차 속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그 환자은 행복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혼과 불륜과 미움이 가득찬 세상에서 마지막까지 자신을 사랑하는 아내가 옆을 지키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남자가 아닌가. 가난 속에서 말기 암으로 죽어가는 남편을 헌신적으로 간호하는 아내, 마지막까지 자신의 모든 것으로 배우자를 사랑하는 광경을 보고 그 아름다움에 마음이 저려왔다.


 


이제는 사라져 버린 고향의 나무와 개울과 바람과 별들이 창밖으로 스쳐 지나갔다. 자동차는 산동네를 빠져나와 시내로 들어섰고, 거리는 다시 네온의 불빛과 사람들의 분주함으로 가득했다. 갑자기 다른 세상에 온 느낌이 들었다. 방금 있었던 애절한 기억들이 까마득한 옛일처럼 지나갔다.


 


그래 나는 가난하지도 않고 건강해, 나는 그곳 사람이 아니야.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네온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아침에 일어난 나는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렸다. 그것이 나의 이기적인 모습에 대한 회개의 눈물이었는지, 다시 세상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 연약함 때문이었는지, 지금은 사라진 고향의 그리움 때문이었는지 지금도 알 수가 없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 비뇨기과 의사 이주성 님의 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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