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27일 성남 행복 아카데미 25회에
성남을 대표하는 조정래 소설가 강연이 있었다. 주제는
책과 나의 이야기 이었다.
동대 졸업, 소설등단, 동대 석좌교수로 성남에서 거주하는 성남사람이다.
성남시 형성 과정은 청계천 빈민가에서 내려와 형성되었고 그것을 말하고 싶어 소설을 썼다고 했다. 서울에 올라갔다가 너무 공기가 탁해서 하늘이 보이는 분당으로 이사와 쭈욱 살았고 산이 좋아서 좋다. 민주주의는 국민을 위해 하여야 하는데 지방자치를 하면서 너무 큰시청을 지었다. 용산. 성남, 용인등 큰 청사는 잘못 된 것이다. 국민들은 우리의 혈세가 어떻게 쓰여지는지 관심을 갖고 살펴야 한다.
조정래 소설가는
대하소설 서른두편의 긴소설을 썼다. 우리민족의 삶이 슬프고 처절해서 작가의 사명감으로 썼다. 우리 역사 오천년 동안 931번의 침략을 받았고 그중 중국이 제일 많고 그다음 일본이다. 임진왜란과 인조가 청의 침입을 피해 남한산성으로 피난 갔다.그러나 40일이 지나도록 청이 물러가지 않았고 식량은 바닥이 났다. 그로 인해 청나라 에게 굴복하여 삼배구고두례(세번 절하고 아홉번 머리를조아렸으나 청의 황제는 머리를 땅에 박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하여 수십번 다시 시켜 인조의 이마에서 피가 줄줄 흘르게 하였던 일. 인조 15년 1월30일) 식민지36년등이 가장 슬픈 역사 이다.
신치호선생님은 역사를 잊어버린 민족은 미래가 없다고 하셨다. 그래서 과거를 되살리기 위해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을 집필했다..식민지 , 산업화 과정의 우리의 고통을 썼다. 정글만리는 우리의 민족이 가야할 미래에 대해썼다 우리는 지금 국민소득 26000달러 인데 우리는 배가 고프다고 느낀다. 그것은 같이 행복하려고 하지 않고 나와 나의 가족,내아이들만 잘되어야 한다는 이기주의 팽대해서 그렇다. 그래서 다함께 행복의 길을 가기위해 이소설을 썼다.
중국은 더럽고, 쩍퉁을 잘 만들고, 게으르다고 하나 우리에겐 가장 큰 시장이다. 앞으로는 더욱더 커질 듯하다. 달러 보유고가 우리가 12년 동안 아무것도 쓰지 않고 모아야 될 돈이 있단다. 중국의 화교 170 여개국에 있고 화교 인구 일억이 차이나타운 만들고 삼조 달러를 가지고 움직이고 응집 또한 대단하다. 그 돈은 밖으로 유출시키지 않고 쓰지않는다. 중국은 세계의 공장. 지금은 세계의 시장이 되었다. 중국 인구는 십사억으로 소비시장 또한 대단 하다.
등소평이 미국,독일 방문 이유는 기술을 전수받기 위함이었다. 다른 나라에선 비협조적 이었다. 독일에선 기술 협조하고 고속철도 놓아주었다. 프랑스. 영국이 독일에게 꼼짝못하는 이유는 중국에서 돈을 벌어드렸다. 그리고 1997년 IMF금융위기 잘 넘긴 이유는 중국에서 무이자로 빌려주었다. 우리나라는 IMF때 이자를 25% 냈다. 그리스는 스페인에게 이자 2%를 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이 이자를 내고 돈을 빌려온 것은 국가의 설움이다. 국제적인 싸움에서 경제적 도약을 하려면 중국의 시장활용을 잘 하고 국가관의 사이가 좋아야 한다.
중국부흥 세가지는 외환보유고, 화교들의 경제력. 농민 근대화의 공이 크다. 이십년 물가 안정돠었고 우라나라는 산업인구가 천팔백, 중국은 일억이다.그나마 우리나라 인구는 도시에 주로 몰려있다. 중국은 오억의 인구도 언제든지 산업인구로 변할 수 있다. 중국은 진시황이 통일을 했지만 더 통일을 아룬 것은 모택통이다. 모택동은 G2 사십년 앞당겼다.
중국은 게으르지 않고 기다림이 있다. 우리와 살아가는 방법이 다를뿐이다. 중국과 애증관계 있지만 서로 잘 지내야 유익하다.
일본은 독도룰 자기나라의 땅이라하고 우리를 조센진이라 부른다.
독일은 지나간 역사에 대해 용서를 빈다. 그래서 용서는 하되 잊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일본은 용서를 빌지도 않는다. 우리나라 국민을 사백만을 죽인 강도나라 이다.
분노, 증오, 위안부 없다 하는 것은 증오하고 분노해야 한다. 동남아시아와 연대해서 일본을 배제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국민소득 오만달러를 이루기하기 위해 노력한다. 작가 역시 이꿈이 이루어지게 연구하여 글을 쓰는 것이 임무이라고 생각한다.
역시 소설가는 다 방면으로 박식하고 거기다 미래를 내다 볼수있는 눈과 창조의 능력까지 갖추어야 대가가 될수 있음이 느껴졌다.
수지시니어 기자 김주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