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과 함께 우리 민족 최대 명절로 꼽히는 추석이 코앞이네요. 조상님께 올리는 차례(茶禮)에 햅’로 빚은 송편이 빠질 수 없겠습니다. 중추가절 추석을 맞아 오늘은 이 송편의 원료인 쌀이 왜 햇쌀도 해쌀도 아닌 햅쌀이 되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순 우리말에 그해에 새로 난의 뜻을 가진 접두사로는 주로 햇~과 해~가 이용됩니다. 햇밤·햇과일·햇보리·햇감자·햇병아리와 같이 대부분의 경우 사이시옷을 붙여서 씁니다. 간혹, 햇콩·햇팥·햇쑥으로 혼동하여 잘못 쓰는 경우를 보게 되는데, 뒤에 오는 음절(音節)이 거센소리이거나 된소리인 명사 앞에서는 해~를 붙여 해콩·해팥·해쑥과 같이 쓰는 게 올바른 표현입니다. 그런데 유별난 것은 쌀의 경우 된 발음임에도 그 앞에 햅~을 붙여 햅쌀이라고 한다는 사실입니다.
유독 그 해에 새로 난 쌀만 ‘햇쌀’도 해쌀도 아닌 햅쌀이 된 이유는 뭘까? ‘쌀’은 10세기 고려 시대부터 16세기 말 조선 초기까지 사용하던 중세(中世) 국어에서 ㅂ살처럼 낱말 첫머리에 ㅂ 소리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랍니다. 즉, 쌀(米) 때(時) 씨(種) 등은 중세 국어에서 ‘ㅂ살’ ‘ㅂ대’ ‘ㅂ시’ 와 같이 단어 첫음절에 ‘ㅂ이 붙어있던 말입니다. 그 영향으로 현대 국어에서 홀로 쓰일 때 ㅂ 소리가 나타나지 않다가 입쌀 찹쌀 멥쌀 햅쌀처럼 몇몇 다른 낱말이나 접두사에 붙여 쓸 때 ㅂ 소리가 되살아나기 때문이지요.
볍씨(벼+ㅂ씨), 입때(이+ㅂ때), 접때(저+ㅂ때), 눈을 부릅뜨다(눈을 부르+ㅂ뜨다), 휩싸다(휘+ㅂ싸다), 댑싸리(대+ㅂ싸리) 등도 비슷한 예입니다. 이 경우 벼씨, 이때, 저때, 부르뜨다, 휘싸다, 대싸리라 하지 않듯이 말입니다. 이처럼 현대국어에서는 실제 발음을 고려하여 소리 나는 대로 적고 있습니다. 햅쌀로 빚은 송편 맛나게 드시면서 즐거운 한가위 보내십시오.
◇ 이 글은 인터넷신문 뉴데일리(New Daily) 어문 칼럼 말글갈무리에 게재했던 기사( 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56067 )를 리라이트했습니다.